동학
‘지기(至氣)’를 중심으로 한 일원론적인 우주관에 근거하여 하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일체화될 수 있으며 평등하다고 본다. 따라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이며, “천심이 곧 인심(天心卽人心)”이다. 특히 동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은 하늘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평등사상을 담고 있다.
‘지기(至氣)’를 중심으로 한 일원론적인 우주관에 근거하여 하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일체화될 수 있으며 평등하다고 본다. 따라서 “내 마음이 곧 네 마음(吾心卽汝心)”이며, “천심이 곧 인심(天心卽人心)”이다. 특히 동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은 하늘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며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평등사상을 담고 있다.
2012년 충북 옥천 청산에 명상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지을 때 도종환 의원이 인편에 청산에 정착하는 것을 축하하는 덕담을 적어 넣은 '정순철 평전'을 보내주셨다. 청산에서 태어났다는 정순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청산에 숨겨진 엄청난 동학관련 이야기들을 대중들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준만교수가 늘 말하듯 지식인의 하방운동이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동학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원광대학의 박맹수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약속 받았다. 작가를 물색했으나 마땅하지 않아 다큐소설 형식으로 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직접 써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 동학에 대한 글을 쓰는 김에 전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동학의 이야기들을 담기 위해 지역을 나누어 십여 권을 쓰기로 하고 인연 닿는 대로 교사, 시민인권활동가, 명상지도사 등 글 쓸 여성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5명의 동학언니들이 탄생했다.
2013년 말 최제우가 살았다는 용담정에서 1주일간 합숙을 하며 박맹수 교수로부터 동학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를 들으며, 조선사회 일반에 대해, 소설작법에 대해 공부를 한 뒤 각자 담당지역을 선정했다. 중간에 포기하는 이도 있어 결과적으로 현재 정리된 것이 전라도 2.5권, 경상도 1.5권, 충청도 6권, 강원도 1권, 서울 1권, 북한 1권 총13권이다. 용담정 합숙 이후 본격적인 답사와 공부가 시작되었고 비공개 게시판을 만들어 수시로 박맹수 교수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워크숍을 통해 부족한 공부를 채우며 진도를 맞추어 나갔다.
2015년 2월에 창립한 안산의 여성 단체 ‘함께크는여성 울림’.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의 맴버. ‘페미니스트 저널 if 이프’ 의 창간호 아트디렉터, 완간호 편집장 역임, 현재 작가, 의상 디자이너, ‘서로 배움터, 감우산방’ 대표. 저서 『나는 치명적이다.』(경계를 넘는 여성들, 그리고 그녀들의 예술) 아트북스/ 2010.05.20. 『길 위의 미술관』(제미란의 여성미술 순례) 이프북스 / 2007.10.14.
1997년 결성 때부터 2019년 공식해체까지 그룹 입김의 활동에 관해서는 이미 잘 정리된 자료들이 존재합니다. 저는 지금 저의 관점에서 입김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싶어요. 연애의 시작과 이별에 대한 기억도 각자의 기억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까요.
우선 ‘입김’의 시작! 에 관해서…
1997년 당시, 잡지 이프에 참여하고 있던 저는 작가 하인선과 현대 미술에 관한 공부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원에서 만난 류준화가 다른 여성작가들과 함께 모여 무언가를 도모해보자는 제안을 하기에 함께 만났습니다. 류준화 외에 정정엽, 우신희, 곽은숙이 있었고, 그 뒤 미국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김명진, 그리고 독일서 돌아온 윤희수가 비슷한 시기에 합류하면서 입김의 멤버가 완성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입김의 시작이 과거 ‘민미협’의 갈래 중 하나였던 ‘여성미술연구회’에 의해 발기되었다는 기록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아요. 구성원 중 절반이 여미연 활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나 나머지 절반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그 시작을 저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밤하늘에 홀로 빛나던 별들이 어느 날 서로를 알아보고 연결되어서 ‘입김’이라는 별자리를 이루었다’고…
그리고 ‘입김’의 마지막에 대하여…
2000년 ‘집사람의 집’이라는 작업을 필두로 입김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지만 같은 해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전후로 열정과 고초를 공유하면서 우린 더욱 뜨겁게 결속했었죠. 함께 싸우고! 결국 이겼고! ‘입김’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역할도 환기되면서 이후로도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세상도 바뀌어가면서 계속 이어나갈 이슈도 고갈되기 시작하고 우리의 활동도 소원해지는 시점이 왔어요. 개인영역에서 활동도 활발했기에 각자의 작업에 좀더 집중할 필요성도 요구되었죠. 중요한 건 이 지점입니다.
2008년, 마침 미국에서 린다 킴이라는 전시기획자가 우리들의 작업을 미국에 소개하고 싶어 했어요. 밀스컬리지라는 대학교의 미술관에 ‘The Offering Table(바치며..)’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작업은 공동작업이 아니라 개별 작업을 주제에 맞게 전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한 달 간 체류하면서 우리는 입김의 존속 여부에 대해 긴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정정엽 외 3인은 이제 입김의 활동도 지지부진하고 개인적으로도 지쳐가니 화끈하게 끝내고 흩어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네 명의 생각은 달랐죠. 입김이 반드시 선명한 이슈와 싸움으로만 존재해야 하는가? 그것은 과연 여성적 방식인가? 모든 생명체가 생노병사의 과정을 거치듯 입김도 서서히 진행되는 늙음과 소멸의 길을 가면 안되는 것인가? 느슨한 전시 모임으로 할머니가 되어서도 지속하는 것은 ‘입김’의 치욕인가? 말 그대로 프로젝트 그룹이니 흩어졌다 모였다,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나뉘어진 입장이 좁혀지지 않은 채, 결국 정정엽이 먼저 탈퇴를 했고 곽은숙과 우신희도 함께 나갔어요. 류준화는 공식적으로는 탈퇴를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만남을 이어갔죠. 이런 와중에 누군가는 ‘입김’이라는 이름을 공식사용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불편한 논란이었죠. 하지만 남겨진 우리는 그 이름이 무엇이건 이후에도 지속적인 전시를 이어갔습니다. 전시 지역은 미국 뿐 아니라 호주와 일본 등지로 확장되었죠. 그렇게 별스러운 별거의 시간이 이어지던 2019년, 우리는 모처럼 다시 모여 결국 이혼 도장을 찍었습니다. 경복궁 근처 민속 박물관 앞에서 공식 해체 기념사진도 두어 장 찍으면서 합의 이혼을 했던 것이죠. 날씨는 맑고 마음은 쓸쓸한 날이었습니다.
대안공간 루프의 그 다음 시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제가 4년 전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를 맡기로 한 이유 중에 하나가, 기획의 독립성을 완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조건 때문이었어요. 사실 한국에 그런 공간이 없거든요. 데아펠도 말하자면 루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어요. 처음 대안공간으로서 아티스트런스페이스(artist run space)로 시작했거든요. 그러다가 사스키아 보스라는 큐레이터가 디렉터를 맡으면서, 데아펠을 중급기관인 아트센터로 바꾸게 되었죠.
홍대에 있는 ‘현대 미술 실험실’처럼 콤팩트하게 제가 하고 싶은 연구나 기획을 1년 단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시도 있고 강연도 있고 퍼포먼스도 있는,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나누는 방식의 기획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루프의 직책을 맡기로 했어요.
하지만 어떤 매니페스토(manifesto)를 선언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루프의 프로그램을 기획해 오다 보니 최근 더 분명해진 것들이 있어요. 결국 ‘현대 예술계에서 클리셰를 벗어나는 자본주의 비판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었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에코페미니즘’이라는 가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비판, 그리고 다양한 방향성의 고민을 가지고 계신데요. 기획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직을 꾸리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을 조율해가는 방식같은 것이 있으시다면요?
네덜란드의 예술 기관들은 ‘환대’라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거든요. 환대는 단지 매너로서 ‘친절’과는 다른 것이죠.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관계가 사물의 관계로 작동하는 물신화한 사회잖아요. 그러기에 연대로서 환대가 다시 중요해지죠. 환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투쟁이기도 하구요. 관객을 환대하고, 예술가를 환대하고, 스태프도 서로를 환대하는 이 모든 환대의 과정이 단순히 겉치레가 아니라 진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계속해서 고민을 해왔어요.
큐레이터, 동료들, 작가들과 어떻게 협업을 해야 하는지, 단순히 공간을 주고 당신의 전시를 만들어봐라 하는 식이 아니라, 우리가 갖는 지향점과 가치를 나누고 전시를 함께 조율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인 차원이어야겠죠.
간단한 예를 하나 들면, 올해 루프 목표 중에 하나가 전시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이에요. 아티스트는 특정 형태의 전시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전시 쓰레기를 더 만들어내는 건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설치에서 가능하면 가벽 제작을 없애는 방향으로 바꾸는 조율을 하고 있어요. 작은 실천이지만 쓰레기를 실제로 많이 줄일 수 있었죠.
루프 전시에서 사용했던 커튼 같은 것들을 다른 전시 공간에서 가져가기도 하구요. 그러면 루프 만의 리사이클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다른 물건으로도 이어지는 거죠. 어떤 전시가 발암물질이 한껏 담긴 저렴한 목재를 사용해 가벽을 만들었다면, 그 전시는 절대 관객을 ‘환대’한다고 말할 수 없겠죠.
관객뿐만 아니라 이 지구를 포함한 모두를 어떤 방식으로 ‘환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대안공간 루프는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신생공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대안공간 루프는 지금 ‘대안공간’으로서 어떻게 정체화가 되고 있고, 또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대안공간 루프가 처음 시작되었던 1999년, 루프는 홍대라는 지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어요. 클럽이나 인디음악, 언더그라운드 패션 같은 것들이 현대미술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그것을 접목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맡았었죠.
그런 흐름을 이어오다가 공장미술제에서 불거진 아티스트 피(artist fee) 문제가 본격화됐을 때, 대안공간들이 이야기했던 ‘대안’은 거기서 한번 끝났다고 봐요. 아티스트비 문제를 큐레이터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답하는 것은 공감받기 어려운 논리였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년부터 이어져 온 코로나로 인해, 저는 전면적으로 이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결국 우리가 근본적으로 천착할 것은 자본주의 가부장제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모두가 문화 산업으로만 달려가고, 문화 산업의 눈으로 가치가 매겨지죠. 루프는 관람 티켓을 판매하는 것도 아니고 수익사업을 하지도 않는 비영리 기관이죠. 루프의 가치 평가가 가격과는 별개로 나오잖아요.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조건은 큰 기회이기도 해요.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벗어난 가치 평가. 지금 어떤 곳이 이런 조건이 가능하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가치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나온 대안이 바로 에코페미니즘이었습니다. 에코페미니스트인 사회학자 마리아 미즈(Maria Mies)가 만든 연구 워크숍 방법론이 있어요. 올해는 그것을 실험해보려고 해요. 주류 사회학의 연구 방식과는 별개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사적 경험에서 연구를 시작해서 자기 작업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거죠.
2020년 ‘예술가를 위한 자본주의 세미나’를 루프에서 진행했어요. 4회마다 3시간 씩 <자본론>을 다시 살펴보는 강연이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셔서 저도 놀랐어요. 참석한 분들의 진지함에도 놀라기도 했고요. 올해도 계속 그런 강연과 텍스트를 읽는 프로그램들을 아티스트와 결합하여 진행해 나가려 하고 있어요.
저는 루프의 프로그램이 비영리 대안공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질문들을 던지고 고민하는 것이 지금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이런 고민을 오래 하셨던 아티스트가 상당히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싸워온 아티스트를 다시 소개하고, 연대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환대하는 것. 결국 ‘대안’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2021.06.26.(토) ~ 07.10(토) 공간:일리에서 열린 7인의 여성 작가 릴레이 개인전 《규중칠우쟁론기》 그 두 번째 이야기에서 펼친 박슬기 작가의 이야기는 <시듦>이었다. 그의 언어는 꽃이라는 의미를 전복하고자 하였다.
꽃 그림을 그린다.
나의 최근 관심사는 뻔하고, 폄하된, 전형적인 꽃에 관한 것들이다. 미술사에서 유구한 주제로 다뤄지는 꽃은 전형적인 ‘여성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꽃밭’이라는 진부한 표현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나는 스스로 꽃이길 바랄 때가 있었고, 꽃으로 불리기도 했었고, 이제는 꽃이 아닌 존재로 규정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일부러 웃기도 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에 계속 어딘가를 곁눈질했고 내 마음은 허공에 가 있었다.
내가 말을 했을 때, 그때 알았다. 내 말은 쉽게 ‘믿어지지’ 않거나 ‘불평불만’ 정도의 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아무 일도 없다. 말하지 않은 일들은 한 사람 안에서 곪아간다.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는 몸속 기억들은 뭔가 의문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물리적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은, 기억 속에만 고여 있는 꽃다발을 굳이 꺼내는 일은 왜 필요할까? 꽃을 입체적으로 감각하려는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상화와 내면화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자기 자신으로 불리고 싶은 꽃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려지는 꽃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여성스러움’이 수시로 납작해지는 일들을 관찰하고, 아예 고착화된, 진부한, 진부해서 더 문제인 단어들로 경계를 허문다.
느낌표 대신 물음표로 감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꽃 그림이나 그리는’ 정성스러움을 통해 ‘꽃 같음’을 긍정하면서도 부정하고, 꽃다발이 어떤 맥락에 의해 얼마나 의미가 달라지는지 묻는다. ‘꽃이(아니)다’를 반복해서 속삭이며 사 회가 있으라고 한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여러 겹의 존재들이 스스로 자신을 충분히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층적이어야 하는지를 또 묻는다. 불현듯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과 꽃에 다시 이름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꽃을 불러내는 일이, 위로와 연대가 될 수 있을지, 기억에 고립되지 않을 수 있을지, 다시 묻는다.
2021년 9월 26일 ~ 10월 10일 공간:일리에서 열린 7인의 여성 작가 릴레이 개인전 《규중칠우쟁론기》 그 여섯 번째 이야기는 문상훈 작가의
나에게는 미래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는 나의 미래가 없다. 정상사회가 기준으로 세운 것을 어느 순간부터 이룰 수 없다고 느꼈고, 그 논리와 기준에서 나는 종종 미끄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사회에 자신을 잘 길들여가며 살아왔는데, 이제 더 이상 발아래 주어진 디딤돌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모든 걸 결정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미래를 향해 살아갈 것인가. 나만의 미래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소수자적 관점에서 동물과 공존하며 그에 맞는 식단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하거나, 서핑을 하고, 돌아와 책을 읽고, 신선한 야채로 식사를 한 후 일을 하다가 낮잠을 자고 나서는 일어나서 본업인 작업을 하고,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하거나,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연인과 함께 보다가 잠드는 삶을 가진, 수염 달리고 멋진 문신을 한 사람. 이 중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이것을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지에 현혹된 것일까? 어린 시절 나는 영화를 보면, 남성 역할 배역에 이입하곤 했다. 그리고 그 배역이 악하면 거부감이 들지만 그게 내가 ‘이입해야 할’ 대상이었기에 부대낌을 느끼면서도 동일시했다. 딱히 남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가 이입할 만한 남성성을 가진 스크린 속 캐릭터는 남성밖에 없었다. 그렇게 성장해서 나는 그 캐릭터들의 유해함을 알게 되었고 또 세상에 남성성을 가진 비남성 캐릭터가 등장하게 되면서, 조금 더 확장된 자아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이미지의 중첩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과거, 우리는 거울 속 장소 없는 장소가 유토피아라고 했다면, 지금은 내가 상상하지 않아도 재생되는, 혹은 나의 상상의 기반이 된 곳, 검은 거울(블랙미러)가 있다. 나에게 끊임없이 무한의 세계를 보여주다가, 화면이 꺼지는 순간 내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 그래서 계속해서 그 차이를 보여줌으로 무시무시한 우울을 가져다주는 유토피아적 세계. 유토피아는 영영 내 세계 안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을 내 몸에 새기면서, 나의 미래 그리고 내가 바라는 모습을 이뤄보고 싶다. 내 미래는 일단 그 다음부터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한의사인 그는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이 알려지면서 찬반격론이 벌어지고 일부에서는 현통 파괴운동 이나 일부 여성들이 극렬한 방식으로 남녀 대질구도를 몰고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론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고은광순씨 "여아의 낙태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이라며 이 운동을 가부장제 부조리를 치료하기 위한 '문화운동' 이라고 답변하였었다.
고은광순씨는 특히 엄마성도 함께 쓰게 됨으로써 있을 수 있는 4자복성' 의 문제나 수백개 성씨가 만들어내는 발음상의 문제" 에 대해서 일관된 규칙을 따르면 아무런 혼란이 없다고 설명한다. 이미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은 혼란상의 문제를 거론한 남성들로부터 실천에는 난제가 많지만 남아선호나 성비파괴, 상속제도 등에 선언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 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앞으로 고은광순씨는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통해 우리의 제례문화, 명절문화 등까지 양성 중심의 문화로 빈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은광순은 여성동학 다큐소설 13권 청산편을 쓴 저자 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들었던 짝짜꿍 노래,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불렀던 졸업식 노래가 동학과 관련이 있다고? 교과서에서 안 가르쳐주는 사실들이 다큐소설에 녹아있으니 정말 놀랍다!”
1990년대 한국페미니즘 계열의 작가 이순종은 한국의 자생적 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인,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실험하면서 신윤복의 「미인도」를 재해석한 대표작 「여인」 시리즈 작업을 했다. 한국의 자생적 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유영모와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 사상을 알게 되고 예술 활동보다 연구에 더 큰 열정이 생기기도 했다. 인간의 몸, 그 근원, 자연스러운 생명성을 에로티시즘으로 설명하며 정체성, 특히 "생명성"에 대한 꾸준하고 끈질긴 고민으로 "침" 작업을 시작하였다. 노화되어 부서지고 꺼끌꺼끌한 한국 바위산 계곡의 졸졸졸 흐르는 물과 주변의 흐드러진 꽃은 '에로틱'하다. 침은 혈을 뚫어 기를 돌게 하는 치유의 의미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상처에 의해 날 서 있고 서로 찔러 아픈 우리의 모습과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침은 생명의 발현을 저지하기도, 흥하게도 하는 매개체로, 날카롭고 거칠게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털이나 세밀화 같은 이중적인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항일·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이소사의 행적을 기록한 책들이 있다. 장흥문화공작소가 낸 <1894 석대들>에선 ‘장흥동학농민혁명 여성 선봉장’이소사, <갑오의 여인, 이소사>(최혁·2014),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록물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르고> (명금혜정·2015)에도 이소사는 등장한다.
“당시 일본 <아사히신문>에 장흥에서 이소사라는 여자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짤막하게 도된 사실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여러 사람에게 물어봐도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여성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일일 것이다.” 소설가 송기숙 전남대 명예교수는 1990년 5월 <역사와 현장>(남풍) 1권에 쓴 ‘장흥지역 동학농민전쟁 관계 구전조사’라는 글에서 이소사(1874?~1895)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처음 언급했다. 결혼한 여성을 뜻하는 말인 소사(召史)는 이두식으론 ‘조이’라고 읽는다.
미나미 고시로의 구술기록인 <동학당 정토(征討) 약기>가 실린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제6권에도 ‘여동학’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소사에 관해 흥미 위주의 기사를 썼지만, 글 행간에 ‘진실’이 스며 있다. “동학당에 여장부가 있다. 동학당의 무리 중에 한 명의 미인이 있는데 나이는 꽃다운 23살로 용모는 빼어나기가 경성지색의 미인이라 하고 이름은 이소사라 한다. 오랫동안 동학도로 활동하였으며 말을 타고, 장흥부가 불타고 함락될 때 그녀는 말 위에서 지휘를 했다고 한다.”(<고쿠민신문> 1895년 3월5일치)
일본 <고쿠민신문> 1895년 3월5일치 기사. 박맹수 원광대 총장 제공 남녀차별이 심했던 19세기 말 봉건사회에서 이소사는 어떻게 농민군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박맹수 원광대 총장은 “1860년 출발한 동학이 ‘사람이 하늘이다’라며 양성평등 사상을 내걸었다는 점이 중요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온실열람은 2021.04.03.(토)~04.24.(토)에 구기동의 공간:일리에서 열린 전시로, 사전 공모를 통해 접수한 개인의 사적인 Zine부터, 쓰고 그리는 행위들이 모여 잡지라는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주목한 열람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잡지 if 이프를 주목하였고 나아가 세대를 잇는 여성들의 매개체로서의 출판, 유통, 공간까지 확장하여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인 목소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본다. 전시연계 프로그램 중 하나인 “잡지를 만드는 여성들, 쓰고 그리다.”는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잡지 『이프』의 초기 발행인들과 함께하는 토크로 전시와 서점이 있는 공간 더 레퍼런스와 협력하여 진행하며 환경잡지 『바질』, 여성 참여잡지 『언니네 마당』 도 함께 한다. 더불어 이번 전시는 열람실과 온실이라는 두 가지 콘셉트로 함께 만들었다.
<젠더+기술: 오류의 재생>은 현재 진행중인 리서치 프로젝트로, 젠더, 예술, 그리고 기술의 접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비평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도처에 존재하는 젠더의 위계적 구조는 기술에서도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출발하여 ‘남성과 여성’, ‘동양과 서양’, ‘자연과 기술’ 등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구조로 담론을 확장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나와 타자의 순환적 공존의 관계에 시선을 돌리고, 이것이 가능한 새로운 구조와 내러티브를 주관주의적 관점에서 모색해 보았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선보인 후 올해 서울에서 그 두 번째를 진행한다.
“나는 그녀와 그를 통해 우리와 함께 있는 그들 속에서 나를 본다, 우리는 편리함을 소비한다. 역으로, 내가 나 그가 그녀 우리가 그들 네가 나 그녀가 그 내가 나.”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형용사와 명사 – 인스타그램적인, 셀카, 유튜버 등 -를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기술 속에 드러난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주체성, 자동화, 재생산과 재소비의 논리를 살펴볼 것이다. 이같은 새로운 형태의 정보 식민화, 자본주의적 구조와 사상, 성적 양분화와 편견의 주체는 누구인가? 데이터 알고리즘 이면의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자동화 과정을 통해 인간성도 편리함과 쾌락만 좇는 자동화된 싸이보그가 된 건 아닐까? 다층화된 기술 시대의 인류의 미래는 무엇일까?
올바른 대답보다 올바른 질문을 찾으며 <젠더+기술: 오류의 재생>은 전시, 퍼포먼스, 토크, 영화상영회, 인문학 강연을 선보인다. 듀 킴, 다이애나 밴드, 로사나 그라프의 전시, 로사나 그라프의 퍼포먼스, 리사 클러스터커터, 플로리안 뮬러, 여인영의 아티스트-큐레이터 토크, 안드레아 프란코, 스텔라 안, 파비안 어레스티, 이혜성, 켈리 선 킴, 나오코 타사카, 리오 샴리즈의 영화 상연회, 허욱, 파트리샤 리드의 강연 등이 준비되어 있다.
포르노그래피에 볼 수 있는 젠더 위계구조의 구체성, 네트워크의 자본주의화, 팝 문화의 퀴어 미학, 자연성과 인공성의 혼재를 주제로 하는 전시와 여성 및 퀴어 독립 영화인들의 영화 상영회를 통해 다양한 내러티브를 살펴본다. 이에 더하여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코스모 테크닉스 시론>의 저자 허욱과 <제노페미니즘 마니페스토>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파트리샤 리드의 강연을 통해 ‘우주론’으로 논의를 확장, 대안적 구조를 탐색해 볼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이란 거품과 함께 경제적으로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새로운 영역의 영토 전쟁 시대에 들어섰다. 이 또한 자본의 가치를 중심으로 앞을 보고 달린다. 우리는 데이터가 아직도 낯설고 추상적인 형태라고 느끼지만, 데이터는 마치 민주주의적, 자율적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린 정보의 투명성을 가진 것 같은 착시 현상을 우리에게 주며 인간의 주체성을 뒤흔들고 있다. 주체성의 진정성과 자율성의 아이러니 또한 혼란스러운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은 듯 하다. A.I.MAGINE 전시와 연계 행사는 이러한 혼란을 단순히 흑과 백, 인간과 인공지능으로 분리해서 보는 시점에서 나아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그 시선을 집중하고자 한다.
삼차원의 상자를 상상해보자
이 상자는 새 개의 좌표를 가지고 있다: 시간, 공간 그리고 사람
한 개의 좌표를 더하자: 인공지능
사차원 현실을 상상해보자.
그 현실은 네 개의 좌표를 가지고 있다.
시간
공간
인간
인공지능
우리가 상상하는 사차원 현실 안에서
이 좌표들이 모인다고 상상해보자.
모이는 지점을 ‘우연'이라고 하자.
우리가 상상하는 사차원 현실안에서
이 우연들 사이에 일어나는 파동-입자 활동을 상상해보자.
이 활동을 ‘관계'라고 하자.
이제 불규칙한 카오스와 복합적이자 다면적인 사차원 현실 안에서 여러 개의 다양한 우연과 관계들을 상상해보자.
우리가 현실을 지각하는 시선의 테두리에서 시작해, 우선 현실을 재구성해 상상해 본다. 양분으로 분열된 현실이 아닌 양분의 좌표들이 공존하고 그 사이와 주위에 형성되는 복합적 우연과 관계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복합적 차원의 현실을 상상해 본다. 이 구조 체계를 기반으로 '상대방[other]'과 나 또는 객체와 주체의 주체성, 특히 인공지능과 인간의 주체성을 살펴본다. 주체성을 재구성하는 접근은,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더 나아가 비-인간 즉 기계, 동물 등으로 확장된 인간적 접근을 유도한다. 대립하는 두 개의 요소의 혼합에서 '나'를 상대방과의 관계 안에서 보고 상대방을 '나'와의 관계 안에서 보는 현실, 즉 인공지능과 인간이 공존하고 관계하는 현실이다. 나아가 이 관계를 조명하기 위해 인공지능이 인간을 보는 시선을 알아보고, 비-인간과 인간의 현실이 하나가 되는 실험을 통해 이 관계를 복잡화한다.
이번 A.I.MAGINE에서는 8팀의 다양한 장르의 작가와 엔지니어로 구성된 콜렉티브와 함께 A.I. 기술과 이념을 응용하고 표출한다. 3개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사운드 퍼포먼스, 인터랙티브한 로봇 팔, 가상현실, 증강현실, 애니메이션, 게임 설치물 등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오늘날 도시 환경과 도시 재생, 미세먼지, 인공과학을 기반으로 한 성 선택에서, 인간의 표정을 해석하는 인공지능의 시선, 가상 및 증강현실에서의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초현실성까지 포괄하는 주제를 살펴본다. 또한, 작가, 과학자, 이론가, 철학자와 함께 이분법적 논리 구조의 대안으로 제안하는 우주론[cosmology], 생물학적 및 기계적 사유의 공존, 음악이 인간의 두뇌에 주는 영향과 뉴런 알고리즘의 청각화, 추상적 데이터의 시각화와 인간의 정신세계가 기술을 통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등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 인문학 강연 3회, 마지막으로 A.I.MAGINE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와 큐레이터와의 각 작품과 전체적 전시에 대한 대화 2회를 진행한다.
‘I love we love we love I’는 ‘공동체’의 완벽한 개념을 구성하는 데 있어 시뮬라크라가 실재(real)보다 더 실재성을 가지는, 즉, 하이퍼리얼로서, 감정의 환영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동시대 사회, 즉 단일 목표를 가진 무한한 정보의 흐름을 성찰하는 데 있어, 유한한 나선형의 순환적 개별화를 떠올린다. 스페이스 원의 전시, 퍼포먼스, 토크 아카이브를 보여주면서, 본 마이크로-전시는 모호성들 중 낭만주의와 비평, 나와 타인, 애정과 혐오의 경계에 위치하고 또한 계속하여 그 주위를 움직인다.
“…양안의 망막 이미지는 동일하지 않다. 그것이 이미지의 개별화를 일으키는 정보로서의 이질성이며, 즉, 그것이 통일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다.” (허욱, Recursivity and Contingency)
‘통일되기 위해 다른’ ‘공동체’의 의미를 낭만화할 때, 서로의 작용을 가능케 하는 수행적, 상호의존적, 순환적 관계의 구조의 미학적 경험을 함께 불러온다. 바로 이 환상적인 ‘존재’는 내면을 밖으로, 외면을 안으로 뒤집는 초현실적인 드라마와 공명하며 ‘I’, ‘we’ 및 실재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관계의 자율성과 다양성이 ‘부재’함을 인식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I’와 ‘we’의 실재, 기술적 리얼리티를 질문한다. 우리가 의사소통을 위해 기술을 사용한 물건과 상호작용하면서, 우리의 신체적 제스처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이 변화는 신체의 정치학을 바꾸었는가? 이 새롭고 중심적인, ‘정보’와 그 편재함은 무엇인가? 인간, 자연, 기계 사이의 이 새로운 관계는 어떻게 공동체의 의미와 우리의 사고 방식을 변화시켰는가? TV드라마, 미니시리즈, 유튜버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것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세계의 다양한 구조와 내러티브에서 끌어내어, ‘I love we love we love I’는 관계 및 I, we의 증식의 초점을 멀티-자연주의의 수행적이고 신체적인 과정에서 이동시키며 ‘인간의 제3의 본능으로서의 기술’(허욱)을 재구성한다.
“…나-우리는 보편적이고 특정한 것이 아닌 부분적 연결로 세계를 활용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도나 J. 해러웨이 Staying with the Trouble
‘반(飯)반한 방’은 우리가 형상화하는 표면에 대하여 탐구하는 프로젝트이다. 이 표면은 우리의 몸과 감정의, 유기적인, 그리고 디지털의 표피(skin)를 말한다. 정보는 사람과 미생물, 그리고 스크린 사이의 관계에서 온전하며 무기적인 구멍으로 평평해진다. 그 안에서 우리의 욕망은 복합적인 즐거움을 활용하며 모든 표면에 포개어 접힌다.
나는 ‘반'을 음미하며, 동시에 타인이 식사하는 것을 음미한다. 나는 내가 식사하는 광경을 감상하고, 나와 함께 식사하는 상대방을 바라본다. 씹기, 맛보기, 시청하기, 채팅하기, 서빙하기, 엄지손가락으로 두드리기, 느끼기와 같은 행위들은, 뒤섞인 사건들이 공존하며 소용돌이치듯 생명이 없는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 퍼포먼스는 우리의 확장된 표피의 거리가 변화함에 따라 감정을 자극하는 긁힘(abrasion)이 나타나는 것에 주목한다. 이 표피는 한 단어에서 다른 단어에, 한 데이터에서 그 상위에 있는 데이터에, 엄지손가락 끝과 입술 안 혀 사이의 한 글자에 저항하는 표면이다. 말하자면, 글자 ‘O’에서 숫자 ‘0’으로, 그 다음 ‘오’라는 표현에서 ‘!’라는 감탄사, 그리고 이모티콘 ‘😮’과 나의 입술이 만들어내는 ‘o’모양에 이르는 것이다.
표피의 안쪽에는 무엇이 있고 그의 ‘반'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껍질을 벗겨낸다. 그리고 그 반대쪽 면과의 접착력에 대해 저항하며, 표피가 욕망으로 되돌아 순환하기 위해 어떻게 접히고, 돌고, 겹치는지 살펴본다.
나아가, 발효에 대하여 탐구하며, 지속적으로 마이크로 커뮤니티를 창조하고 또 되살리기 위해 가로지르며 다양화하는 그 순환 구조를 연구한다. 먼저, 된장의 세 가지 재료인 콩, 물, 소금에 대하여 알아보고, 그것의 세 단계 발효과정을 조사한다. 최종적으로, 알고리즘 사고의 새로운 공간에서 몸과 감정, 음식, 욕망, 자본과 데이터의 상승하는 상호작용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일부로서 온라인 식사 문화를 살펴본다.
“공유 공간과 시간의 교차로”는 동시대 도시화 과정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대도시에서 공공장소의 위치와 양태를 모색하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협업 프로젝트다. 도시화, 도시 인구와 인구밀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공공 공간과 시간의 사유화는 점차 보편화되고 있다. 우리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공유 공간과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공공 장소를 ‘공유하는 시간’과 ‘공존하는 공간’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아시아에서 ‘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일시적인 미시 공동체(micro-communities)의 영역이 공존하면서 공공 장소의 개념이 유기적으로 발전해 왔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보며, 본 프로젝트는 ‘공유 공간’을 활성화시키고 함께 융합하고자 한다.
본 두 번째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는 작게는 시간성과 이동성이 일치하는 틈새 공간에서부터 크게는 개방되어 있고 고정된 공간, 이어서 조작된 만남이 일어나는 온라인상 공간으로까지 공공 공간을 재고하고 다시금 구성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공간들은 개인과 공공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면서 발생하는 우연들, 조작, 그리고 이동성과 고정성을 반영하고 내재한다. 해방촌에서 진행한 미시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공유 공간과 시간의 교차로”는 그 담론을 시각예술가, 건축가, 영화제작자 및 지역 공동체와 함께 진행하는 강연 및 패널 토크 ‘공유 공간의 파편화: 예술과 건축의 개입 및 융화’, 워크숍 ‘마이크로 커뮤니티를 통해 미래 공유 공간 상상하기’, 공공장소 활성화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필름 스크리닝 ‘불확정한 시네마 II’, 옥상 스크린 설치 ‘시선의 안과 주변, 너머에서’과 이동식 스크린 설치와 퍼포먼스 “10초의 눈길”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확장한다.
주한독일문화원, 스페이스 원, 남산예술센터이 참여하는 2017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남산클러스터'의 일환으로 스페이스 원은 프로젝트 “삼방 회로”를 진행한다.
“삼방 회로”는 오늘날 서울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또는 ‘재생’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존재하는 동시대 공동체들을 예술적 접근으로 연구하고자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는 한국 서울, 독일 함부르크, 인도 부바네스와르에 있는 다섯 개의 공동체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로 시작한다. 공동체들을 이루는 사람들을 ‘주체화’하고 그들의 내러티브를 확장하기 위해 인터뷰는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배경이 된 세 도시들의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화하는 각기 다른 인구, 속도, 규모 안에서의 유사점들을 발견하고자 한다. 각 도시들은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기시킨다. 이를 반영해 인터뷰는 도시의 변화와 과도기에서 발생하는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감정적 양상들을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으로 살펴보는 아홉 개의 질문들로 이루어진다.
이를 기반으로, “삼방 회로”는 퍼포먼스 인터뷰와 지역 기반의 작업을 보여주는 일련의 전시들, 행위 예술가들의 실시간 퍼포먼스와 건축가 그룹의 설치, 그리고 세 도시의 프로젝트 참여자들과 함께하는 패널 토크의 세 개의 프로그램으로 확장된다.
탈중앙화, 분산화된 시스템은 정치인, 부호, 영향력이 있는 사람과 기업에 의해 중요 사안이 결정되는 현재의 한계를 벗어나 개인들의 선택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중앙의 권력에 의해 모든 선택과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 특정 집단이나 중앙 정부에서 정보를 조작하거나, 반대하는 집단의 논의 등을 지우는 것이 중앙 집중식에서는 손쉽게 가능하지만, 블록체인은 블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정보를 감추거나 지우거나, 변경할 수 없다.
페미니즘을 매개로 여성과 기록으로 나누어 볼때 자료를 선별하고 배열하면서 강약을 부여하는 행위에서 탈중심적 기록이 가능한가? 적어도 여성 예술 부분에 있어서는 탈중심 아카이브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범위는 너무나 방대하고 저작권의 문제가 있어 이번 아카이빙에서 모두를 다루기에는 부족하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협의되거나 콜렉티브 소사가 개입하여 진행한 기획이나 작업을 기록하고 나아가 역사적 맥락 안에서 기록 가능한 내용물과 미술 전시와 미술잡지를 중요한 자료로 보았다. 미술잡지는 가장 중요한 자료인 작품사진과 정보, 그에 대한 담론이 집약되어 있다. 특히 사회적 현장 속에서 소통되는 잡다(雜多)한 기록은 중요하다. 개인의 사적인 기록들이 모여 잡지라는 공공영역에 나온 발언들은 공유의 자산이 되어 역사적 사건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인터뷰를 통한 기록은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바탕 한 것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성주의 전시 중 직접 본 전시들을 위주로 기록 하려한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은 2000년 문화관광부가 추진한 ‘새로운 예술의 해’ 공모에서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로 당선되었다. ‘종묘제례’라는 말로도 알 수 있듯이 종묘라는 공간은 이조 왕권의 가부장적 엄숙주의를 상징하는 곳이다.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은 종묘 앞에 위치한 ‘종묘시민공원’을 핑크 빛 쓰게 치마가 휘날리는 미술축제의 장으로 변모시키고자 하였다. 9월29일부터 3일동안 다양한 설치미술과 시민 참여적 퍼포먼스를 통해 권위적인 남성 문화에 익살 넘치는 전복적인 말걸기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전시 당일, 수십 대의 관광버스로 동원된 전주 이씨 종친회와 유림 세력은 전시 작품 훼손과 방해를 서슴지 않았고 작가들 역시 유림들의 욕설과 위협 등으로 신변의 위험을 느끼게 되면서 결국, ‘아방궁종묘점거프로젝트’ 는 제대로 치뤄지지 못했다. 이 사건은 역사문화 공간에 대한 모독이라는 유림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호주제나 동성동본 혼인금지 등의 가부장적 제도에 대한 사회적 공론으로도 이어졌다. 여성주의 예술가와 전주 이씨 종친회·유림 간의 갈등은 긴 법정 투쟁 끝에 예술가들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 최초의 페미니즘 잡지. 1997년 여름호로 창간되어 2006년 봄 완간호까지 총 36호가 발행된 계간 페미니스트잡지를 말한다. 우리는 잡지의 컨셉을 ‘여자의 욕망을 아는 잡지’로 정하고 잡지의 콘텐츠를 관통할 수 있는 이프 스피릿 ‘웃자! 놀자! 뒤집자!’를 개발했다. “웃자!”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려왔다. 그러나 이젠 웃고싶다. 웃음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든다. 폭발하는 침묵처럼, 치솟아오르는 분수처럼 그렇게 웃고싶다. 자 웃자! “뒤집자!”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우리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자라온 하나의 욕망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똑같은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그 욕망이 파괴적이라는 것을. 뒤집고 싶다. 이 세상을 한번 신나게 뒤집어버리고 싶다. 궁금하지 않은가? 어떻게 될까? “놀자!” 우리는 그동안 눈물과 고통에만 익숙해봤다. 여자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고통과 인내, 희생의 지겨운 학습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중독시켜 마침내 노예의 평안을 선사했다. 이젠 싫다. 즐겁고 싶다. 재미있고 싶다. 놀고 싶다. 그리하여 여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싶다. <이프>는 창간특집으로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을 다뤘는데 이 특집은 창간 당시 전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음은 물론 대중의 호응도 뜨거웠다. 또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회자되며 화제가 될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프>는 계속 「아이낳기 싫다」, 「가부장제와의 전면전」, 「여자에게 밤을 허하라」 등 한국여성들에게 금기시되던 다양한 이슈들을 특집으로 다뤘다. <이프> 창간 20주년이 되는 2017년이 되자 <이프>를 만든 사람들이 다시 모여 무언가 해보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래서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페미니스트 26명이 각자 자신의 삶에서 페미니스트가 된 계기를 돌아보고 그런 경험들을 밝히는 고백글이 담긴 단행본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프는 1997년에 창간해 2006년에 완간한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와 1999년에 설립되었던 사단문화 문화미래이프 그리고 2017년에 설립한 이프북스까지 모두 합쳐 통칭하고 있다. 1997년에 창간해 2006년에 완간한 대한민국 최초 페미니스트저널 계간지로 36권이 발행. 이프북스의 저널로 들어가면 36권의 페미니스트저널 이프를 PDF파일로 볼 수 있다. 사단법인 문화미래 이프는 2006년에 설립한 법인으로 송년의 밤, 콘서트, 마녀들의 환장파티, 여성전용파티,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등 여성주의 문화행사를 치뤘다. 이프북스는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창간 20주년인 2017년에 설립된 페미니즘 도서 전문 출판사로 한국에서 활동중인 페미니스트의 기록을 발굴하고 기록해 도서로 출간하는 등 활발한 출판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유튜브 채널 운영을 계기로 로고를 변경했다.
현재 http://www.ifbooks.co.kr/introIf/intro.html에서 PDF파일로 볼 수 있으며 2021년 4월 3일부터 4월 24일에 서울 구기동의 공간 일리에서 열렸던 전시 <온실열람>에서 전권이 모두 전시가 되었고 이번 인미공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전권이 전시되고 있다.
‘과거’의 연대 미상 작자 미상의 한글 수필 작품 『규중칠우쟁론기』의 서사 방식을 빌려 일곱 여성의 감각을 기저로 하여 그들만의 독자적인 미적 감정을 펼치며 이어가는 각각의 개인전이다. 전시는 6월 김성미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박슬기, 강현아, 강유정, 정민주, 그리고 문상훈 강보라 작가의 개인전이 있는 10월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기록이며, 전시를 시작하는 글은 김지은(에코페미니즘, 페미니즘SF) 연구자가 썼고 전시를 마치는 글은 김소원(성북문화재단) 학예연구사가 쓰기로 하였다.
여성과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여성의 손으로 세계를 어루만져 만들어나가는 지난한 작업은 남성 중심적 사고관과 예술관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이해해나가는 앎의 과정이다. 이러한 구분과 작업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을 고정불변의 요소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지배적 성으로 자리 잡은 남성중심주의로부터 탈피하여 기존 체제에 균열을 만들고자 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권력 지향적 남성중심주의가 거대 담론과 총체적 비전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여성은 그 담론과 비전에 포함되었지만 동시에 배제되어 있는 존재들에 눈길을 돌린다. 그 존재는 여성이자 소수자이고, 동물과 식물을 포함하는 비-인간이자, 일상 속 사물이기도 하다.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온전히 조명되지 못하거나 그 가치가 폄하되어 온 존재들을 여성의 감각과 감수성으로 살펴보고 풀어내며 소생시키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를 위하여 본 전시는 작가와 연대 미상의 한글 수필 작품인 『규중칠우쟁론기』의 서사 방식을 차용하되, 이를 현대적 맥락에서 예술적으로 변용한다. 『규중칠우쟁론기』가 옷을 만드는 규방의 일곱 가지 소품들에 목소리를 부여하여 제각기 자신의 공을 내세우게 함으로써 당대의 세태를 비틀어 풍자하였다면, 본 전시는 소비와 지배의 논리 속에서 소멸되고 소진되어 버린 듯하지만, 일상 속 묵중한 방식으로 잔존하는 여성의 감각과 감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 7인의 여성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시를 이어나간다. 김성미 작가, 박슬기 작가, 강보라 작가, 강현아 작가, 강유정 작가, 정민주 작가, 문상훈 작가가 만들어내는 일곱 가지의 이야기는 황수경 기획자와의 협업 아래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아름답게 뭉쳐진다. 각 전시는 개별 전시의 특수성이나 참신성을 앞 다투어 강조하기보다는, 앞선 전시와 뒤따르는 전시 간 보이지 않는 연관성과 유대에 의해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나아가니, 구성과 형성은 이 전시를 추동하는 또 다른 모티브이다.
본 전시는 7인의 여성 작가와 1인의 여성 기획자에 의해 세상과 조우하지만, ‘여성’만을 위한 배타적 예술은 지양한다. 화려하거나 돋보이지는 않더라도, 서로에게 속삭이듯 품어주는 전시 속 연대와 전시 간 연대는 성과 젠더에 구애받지 않고, 나와 다른 존재를 엮어내는 돌봄 과정의 연속이자 연장이다. 그러므로 본 전시는 가부장적 사회가 추동하는 위계 질서적 관계 맺기와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희생으로서의 돌봄이 아니라, 생명을 자본의 논리가 아닌 생명 그 자체로 바라보고, 현재를 온전히 ‘현재’로 느낄 수 있는 여성의 섬세한 감각과 찬찬한 감수성을 전달한다. 이러한 작업은 여성 작가와 여성 기획자의 손에 의해 개시되지만, 이 전시에 공감하는 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여성의 감각과 시적 언어로 여성과 생태의 다층적 관계를 조망하는 본 전시 내에서 개별 전시는 서로 다른 결로 일렁이는 파동이지만, 각 전시는 한데 모여 여성의 서사를 직조해나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에서 7인의 여성 작가들이 전개하는 본 전시회는 여성의 공간으로 일컫는 규방의 7가지 소품을 의인화한 『규중칠우쟁론기』의 현대적·예술적 변용이다. 종결되지 않은 미완의 열린 서사가 공간:일리에서 서로의 개입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2021년 인미공 창작소의 첫 연구공유팀으로 선정된 소사(Sosa)는 여성과 예술, 기술의 문제를 탐구해 온 작가이자 기획자인 여인영과 황수경으로 이루어진 콜렉티브이다. 소사는 약 6개월간 다양한 분야의 협력자들과 함께 ‘유리블록’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유리블록’은 주류 역사에서 탈락되거나 잊힌 여성 예술가들에 주목하고 동학과 블록체인의 탈중앙적 구조를 차용하여 이들을 아카이빙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소사는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1차로 구축된 프로토타입을 선보이며 프로젝트 진행에 도움을 준 예술가, 연구자들과의 인터뷰 및 관련 자료들을 인미공 지하 1층 및 지상 2층에 비치해 기록의 의미를 돌아보고 선택에서 소외되는 서사들에 주력한다. 더불어 성과 발표 기간 동안 4회에 걸쳐 진행되는 세미나를 통해 기록과 기술의 연결성을 읽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황수경은 작가이자 기획자로 ‘여성과 생태’, ‘여성과 기술’에 대한 관계를 탐구, 생태와 기술이라는 상반된 구조 사이의 연결을 시도하며 예술의 눈으로 기술을 바라보고자 한다. 또한, 모두를 위한 대안적 페미니즘을 고민하며 여성과 디지털 기술의 소외자 등을 돌아보고 예술과 기술 사이에 확장하는 언어로서의 디지털 기술을 획득하는 중이다. 동학의 탈중심적 구조와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기술을 연결하여 서양의 관점이 아닌 한국적 시점에서, 이분화된 자연과 젠더, 예술의 경계 흐리기를 시도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과거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을 ‘민중’이라는 코드에서 찾아내고 동시에 ‘동학’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더는 여성의 익명화나 기록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다양한 이야기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인영은 작가이자 기획자로 드로잉, 텍스트 그리고 영상 설치로의 예술적 구체화에서 젠더, 인공지능, 도시화를 주된 연구 주제로 담론 중심의 큐레이토리얼 프로젝트까지 확장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신/마음의 철학에서 시작해 그 주변의 우연성을 탐색하면서, 질문은 순환적이고 전체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마이크로-내러티브에서 발생하는 차이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인간, 자연 그리고 기술의 철학적 이론과 개념적 사고를 기반으로 욕망, 자본과 소비의 순환 관계를 탐구하며 기술 특히 인공지능, 알고리즘 사고, 사이버네틱스, 데이터(정보)라는 새로운 영역이, 지금까지 현존했던 인간과 자연에서 확장되어, 하나의 주요소로 인간, 자연 그리고 기술의 관계를 주제로 토크, 워크숍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동시에 우리가 몸으로 경험하는 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미시적이면서도 거시적으로 확장되는 텍스트, 드로잉 그리고 영상 설치의 작업으로 그 사회적 반영과 비평적 시선을 예술/개념적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에 제약을 거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과, 일상 속에 침투하고 있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 '블록체인'의 합성어입니다. 한국 여성, 성소수자, 디지털 기술의 소외자 등 중심에 서지 못한 젠더의 이야기와 그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동시에, 동학과 블록체인의 탈중심화적 구조와 교차점을 기술의 철학을 중심으로 심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기간 동안 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소통과 담론을 발생시키며 장기적으로 한국 예술의 국제적, 기술적 확장을 도모하려 합니다. 과거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누락되고 배제된 여성과 소수자가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스템 안에서도 동일하게 거듭되고 있는 현상에 의문을 가지고, 데이터를 모으고 분산하며 이를 다시 정리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비선형적이고 자율적인, 탈중심화된 디지털 아카이빙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번 인미공 창작소 연구공유를 통해서는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지워지고 있는 예술계 내의 여성, 성소수자, 디지털 기술의 소외자 등을 돌아보고 이를 기록하기 위한 기술적 접근의 어려움에 주목하고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블록체인 기술과,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배제되는 문제점을 인지하여 한국적 시점에서 예술계 내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준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기록을 수집하는 방법론은 블록체인 기술의 개념을 활용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제안하고, 나아가 예술의 담론을 확장하는 국내외 문화이론, 기술 그리고 철학 전문가들의 동시대 담론을 다학제적으로 연구하여 타 분야와 연결, 국내외를 연결하고자 한다. 블록체인의 시대적 요구에 따른 사회현상과 기술의 특이성에 집중하기보다는 동학과 블록체인의 탈중심화 구조를 기술의 철학적 접근으로 다가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