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는 수천 종의 사진집이 출간된다. 통계치가 있다면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되겠지만, 누구도 통계 조사를 감히 시도하지는 않고 있다. 분명한 건 한 해에 출간되는 미술책의 종수보다 사진집의 종수가 많으며, 지난 20년간 매해 출간되는 사진집 종수가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 소수의 사진가들의 작품집이 대형 출판사를 통해 만들어졌다면, 현재는 사진 기술, 인쇄 기술, 디자인 소프트웨어의 보편화로 인해 중소형 출판사부터 독립 출판의 형태까지 수많은 종수의 사진집이 세상에 나온다.
25년간 드위 루이스(Dewi Lewis Publishing)를 운영하며 사진집 시장의 변화를 지켜봐왔을 흰 머리의 드위 루이스(Dewi Lewis) 씨에게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다른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과거에 서점들이 한 종류의 사진집을 한 번에 수십 권에서 수백 권 주문했다면, 현재는 매우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새 사진집이 출간되어도 열 권 아래로 주문하는 경우가 많고 추가 주문 없이 한 번의 주문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너무 많은 사진집이 나온다고 덧붙이는 그의 목소리를, 사진집 출판시장의 과거를 모르는 나는 귀를 기울여 들었다. 사진 찍는 것도, 출판도 쉬워진 시대에 대해 사진가이자 사진집 수진가인 마틴 파(Martin Parr)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고무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나쁜 사진집(bad photobook)도 참 많습니다.”
사진 서점을 운영한다는 건 나쁜 사진집을 거르고, 좋은 사진집을 들여오는 일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이다. ‘큐레이션(curation)’이란 말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구성해내는 방식도 뜻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수많은 것들 가운데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좋은 음식의 기본은 좋은 재료인 것처럼 좋은 큐레이션의 기본은 좋은 책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좋은 사진집인가? 사진가가 찍었을 수많은 사진 가운데 엄선해 배열하는 편집, 책이라는 구조물에 사진을 어떻게 설계해 넣을 것인지 고심한 디자인, 사진을 어떤 질감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현실화하는 인쇄라는 각 과정의 완성도가 높아야 좋은 사진집이 만들어진다. 고전적인 편집이 더 어울리는 작업도 분명 있지만,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과 경로가 다양해진 오늘날, 소피 칼(Sophie Calle)의 Because, 린코 가와우치(川内倫子, Rinko Kawauchi)의 Ametsuchi, 안드레스 곤살레스(Andres Gonzalez)의 American Origami 등 사진집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감상의 영역을 열기 위한 실험적 시도를 한 사진집에는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완성도 높은 사진집을 찾기 위해서는 책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를 위해 매년 기회가 되는 한 파리 포토(Paris Photo), 오프프린트(Offprint), 뉴욕 아트북 페어(NY Artbook Fair) 등 사진과 관련된 페어에 방문해 새로운 작업을 살펴본다. 출판사나 작가를 만나 설명을 듣고 사진집을 펼쳐보고 어떤 책을 소개할지 고른다. 사진과 관련해 쌓아온 모든 지식과 경험이 근거가 되어 선별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는 미처 살피지 못해 놓친 사진집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어쨌거나 개인의 취향과 관점이 반영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큐레이션 채점표라는 게 있다면 백점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백 점이라는 가상의 결승점에 가까워지기 위해 무한히 달릴 뿐이다. 그렇게 책을 들여오고 나면, 매일 매달 또다시 새로운 책이 나오고, 가까워진듯한 결승점이 다시 멀어진다.
이 레이스는 그래도 외롭지 않은 구석이 있다. 서점의 운영자는 표면상 한 명이지만, 결승점을 향한 무한한 레이스에 사진에 진지한 손님들이 합류해 같이 달린다. 어떤 손님은 내가 모르는 사진가를 알려주고 내가 놓친 책을 권한다. 서점에 다양한 종류의 사진집이 모이는 데는 손님의 역할이 가히 크다.
사진집을 사는 사람은 우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동시에 사진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을 좋아해도 사진에 관심이 없다면 텍스트책을 사거나 예술서적 가운데서도 패션이나 그림 등 다른 분야를 택할 확률이 높다. 사진을 좋아한다고 사진집을 사는 것도 아니다. 웹상으로 사진을 보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고 장비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사진 애호가가 될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지만 책과 사진 둘 다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사진집을 산다.
이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를 고심하는 진지한 사람들이다. 사진을 가볍게 찍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는 사진찍기에 진지한 마음을 갖고 있다. 다큐멘터리부터 패션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사진작가, 주변 인물과 거리 사진을 찍기 시작한 초심자, 독립 출판으로 자신의 사진집을 내기 위해 참고할 책을 찾는 사람 등 자신만의 시각을 위해 각자 나름대로 열심인 사람들이 서점에 온다.
이들은 서점에 모여들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사진집을 펼치고 보고 꽂아두는 몸짓을 반복한다. 조용한 음악 속에 도서관처럼 책장이 펄럭이는 소리만 들릴 때도 있고, 사진 토론장이 된 것처럼 이런 저런 말이 오가기도 한다. “연출해서 찍은 건가?”, “이거 필름인가?”와 같은 질문도 오가고, “이 책은 작가가 이러 저러한 것을 찍은 거야.”라는 설명도 오가고, “둘 다 좋은데 뭐로 고르지?”라는 번뇌도 오간다.
그러다 손님이 책을 설명 혹은 추천해달라며 나를 찾는다. 이것은 만족 또는 불만족으로 귀결되는 시험 같다고 느껴지곤 하는데, 늘 수월히 통과해보겠노라고 손님을 마주한다. 사진집을, 사진을 설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는 본성상 다의적인 이미지의 의미를 고정시켜주는 것이 텍스트이며, 이런 작용을 의미의 정박(anchorage), 즉 닻을 내리는 것이라 불렀다. 서점 운영자로서 나의 역할이 이 닻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항해 중이던 배가 닻을 내리면 한 장소에 고정되는 것처럼, 이미지는 언어라는 닻에 매여 의미가 고정된다. 이미지를 다루는 서점에서 서점 주인은 책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이같은 텍스트의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어떤 손님은 모호한 상태로 부유하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경험을 즐기는데, 이들은 대체로 설명을 바라지 않고 사진의 표면을 시선이 자유롭게 훑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며 어떤 책을 고를 것인지 예측이 불가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사진의 의미, 그러니까 사진에서 그래도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사진집을 설명할 때는 개인적인 감상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려 한다. 서점 소셜 미디어 계정에 책 소개를 자세히 올리는 편인데, 이 때도 원칙은 같다. 작가의 국적이나 나이, 사진이 찍힌 장소나 사진에 담긴 인물에 관한 정보, 작가가 직접 인터뷰를 통해 한 말 위주로 적는다. 서점 안을 서성이는 손님들 중에는 자신의 스마트폰과 서가에 번갈아가며 시선을 두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손에 꼭 쥔 스마트폰 화면에 서점 소셜 미디어 계정이 보인다. 이미지의 바다에서 서점 소셜 미디어가 나침반이 되어 어느 책에 도달할지 고르는 셈이다. 특히 쑥쓰러워 보이는 수줍은 성격의 손님들은 가까이에 있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보며 책을 고른다.
그런가하면 서점주인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거는 손님들이 있다. 이들이 운을 떼면, 말을 들으면서 서점에 있는 사진집 가운데 무엇을 보여줄지 머리 속에서 골라내기 시작한다. “저는 쨍한 컬러를 좋아하고 거리 사진을 좋아하는데 뭘 보면 좋을까요?” 아리 그리예르, 알렉스 웹. “미니멀하게 정물을 담은 사진집이 있을까요?” 조엘 메이어로이츠, 클라우스 괴디케. “재즈와 관련된 사진집 있나요?” 로이 디캐러바, 리 프리들랜더. “가족을 담은 사진집 추천해주세요.” 매튜 핀, 낸시 보로윅.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손님을 마주하면 책들을 건내는 나의 답변도 상세해진다. “듀안 마이클을 좋아하는데, 비슷한 초현실주의적인 작가 있을까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책들이 있긴 한데, 듀안 마이클 특유의 느낌과는 다를 거예요. 아시겠지만 듀안 마이클은 연속 사진, 다중 노출, 손글씨가 특징이라서요. “저는 윌리엄 이글스턴을 좋아하는데, 비슷한 게 뭐가 있을까요?” 이글스턴이랑 스티븐 쇼어가 1970년대 컬러 사진을 대표해서 한데 묶이긴 하는데, 시선은 달라요. 오히려 최근에 나온 로레나 로어 사진집 보시면 좋으실 거예요. 하지만 늘상 보여줄 책이 있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를 담은 책 있을까요?” “조명이 나와 있는 책 있나요?” 찾으시는 종류의 책은 없네요. 상상력과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는 질문도 있다. “오늘 날씨가 흐리고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뭘 보면 좋을까요?”
간혹 손님이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사진집을 고르면, 신이 난 나머지 나의 감상을 덧붙일 때가 있다. 그때는 닻이 너무 무겁지 않도록 그 감상이 개인적인 것임을 전한다. 물건을 구매하면서 판매자로부터 설명을 듣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관대한 손님들은 서점에 있는 사진집에 대해 다 아는 거냐며 칭찬을 해주고, 설명해주어 고맙다며 감사를 표한다.
대부분은 여기에서 만족스런 얼굴이 되는데, 어떤 손님들은 멈추지 않고 나를 그 다음 시험에 들게한다. “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걸 왜 찍은 거죠?” 몇 가지 사실 관계만으로는 이미지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발견하지 못한 손님의 불안이 전해져온다. 존재의 이유까지 증명해야하는 건 대부분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의 몫이다. 그들의 책을 서점에 두었기 때문에 그건 고스란히 다시 내 몫이 된다. 이름도 모르는 작가인데, ‘무엇을 보아야 한다.’ 또는 ‘무엇을 느껴야한다.’라는 정답이 없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불안해 보인다. “글쎄요, 그건 보는 사람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몇 번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이 시험은 불만족으로 끝나곤 했다.
가끔은 손님들에게 사진은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작가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얼마나 있는 그대로를 찍으려 했는지 또는 얼마나 연출되었는지와 상관없이, 사진은 결국 모호하다. 아무리 설명을 덧붙여도 사진은 결코 완전히 이해되지 못한 채로 존재를 발산하며 반짝일 거라고, 그것이 사진만의 즐거움이 될 거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만족스런 얼굴을 보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그것이 사진 서점의 역할이라는 생각에, 손님이 나가고 그가 흡족해 할 만한 대답은 뭐였을지 생각하며 책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어제보다 오늘, 조금은 더 나아진다고 믿으면서.
임소라. 1988년생. 대학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고 출판사와 서점에서 일했다. ‘도시, 선’ 시리즈와 ‘거울 너머’ 시리즈 등을 발행했다. https://howweare.kr
오늘도 벌써 세 번이나 내 이름을 검색했다. 인스타그램 한 번, 트위터 한 번, 구글 한 번. 아직 정오가 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오늘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각각 세 번씩, 총 아홉 번은 더 검색해볼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검색 결과는 한결같다. 인스타그램은 뮤지컬 배우 임소라의 사진이, 트위터는 뉴스 기자 임소라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고, 구글은 앞의 두 사람과 관련된 웹페이지를 번갈아 내놓는다. 동명이인들의 소식 사이에서 찾아낸 내 얘기는 사실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자위하기도 멋쩍은 주기로 업데이트되는 내 소식을 보고 있자면 그때 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자문하고 싶어진다.
‘거울 너머’라는 이름으로 시리즈 작업을 하던 때의 일이다. 메일의 요지는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메일로 소통하길 요청할 만한 융통성이 없던 그때는 약속보다 한 시간 먼저 나가서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앉자마자 출판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기별 통계 수치까지 덧붙이던 그들이 중간중간 “작가님도 해 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다는 눈썹을 두어 시간 연출해야 했고 헤어지기 10분 전쯤 출판권 설정 계약서라고 쓰인 문서를 받아 들었을 때는 볕 좋은 날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나 나누자던 만남이 출판계 불황의 역사 특강 및 졸속 서명으로 이어진 것이 여러모로 부담스럽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앞서 그들이 언급한 두루두루 어려운 상황에도 나의 책을 만들어 팔아주겠다니 감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몇 달을 더 갈팡대다가 “죄송하지만”으로 말문을 열고 “거듭 죄송합니다.”로 마무리짓는 메일을 보내며 계약금을 돌려드릴 계좌를 문의했다. 통장에는 100만 원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정확히는 100만 원이 아니라 96만 7,000원이긴 한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이듬해 늦가을까지 동일한 사례를 두 번 더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슨 은행도 아니고 100만 원을 이자도 없이 주고받았던 출판사들의 신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심경은 복잡해진다. 뭐라도 쥐어짜냈어야 한다며 자책했다가, 어차피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기에 오래 끌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책을 내면 낼수록 마이너스라더니 어떻게 지금까지 내고 계신지 의아해진다. 자책과 다행에 비해 의아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6년 전 근무했던 출판사의 술자리에서는 매번 생생한 불황의 증언들 속에서 할증을 염려했고, 3년 전 동료들과의 송년회에서는 너도나도 불황의 산증인을 자처하다가 첫차를 기다렸으며, 오늘의 나 역시 뮤지컬이나 뉴스보다 출판 시장이 훨씬 작고 침체되었을 가능성과 내 소식을 찾기 어려운 점 사이의 연관성을 오단하며 힘차게 ISBN을 찍어내는 컨베이어벨트로 올라타지 않았는가.
여기까지 읽고, ‘아니, 그럼 불황이 다 술주정이라는 소리냐?’라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런 뜻은 절대 아니며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의 납본 대행 기관인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자료실에만 들어가도 출판계 불황을 입증하는 통계가 즐비하다. 다만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이 땅에서 출판을 업으로 삼은 무수한 이들이 과거의 불황을 익히 알고, 현재의 불황을 인정하며, 미래의 불황을 예측하는 가운데 그 유구한 불황을 자주 욕하고 종종 핑계로 쓰거나 드물게 위안으로 삼기도 하며 또 책을 만든다. 결국 불황은 욕과 핑계, 위안 등 복잡한 심경의 복합체가 되어 흑자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모두에게 출판을 지속하는 원동력의 일부를 차지하는 역설적 꿍꿍이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속이 답답한 분들을 위해 풀어서 말하자면 그동안 내 책은 썩 잘 팔리지 않았고, 이번 책도 기대를 저버렸으며, 다음 책도 변함 없을 것이 자명하지만 또 신간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거듭 관심을 부탁드리며 오늘도 족히 아홉 번은 넘게 당신의 업데이트를 기다릴 거라는 말이다.
더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는 LA에 있는 서점 이름이다. 슬로건은 다음과 같다. What are you waiting for? We won’t be here forever. 언제 망할지 모르니 빨리 책을 사라는 얘기다. 대부분의 독립 서점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책을 안 사요. 월세가 너무 올랐어요.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서점은 느리고 여유 있는 삶과 관계가 없다. 자아 실현과도 거리가 멀고 힙하거나 세련된 삶이나 가치 있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있는 거라곤 낮은 이윤율과 기형적인 산업 구조, 허울뿐인 관심과 인정,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의 반복, 거대 기업과 4차 산업 혁명의 습격… 뿐이다, 라고 말하면 너무 비관적인 걸까. 내가 상황을 과장하는 걸까. 그러나 이게 현실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서점을 하는 걸까? 또는 왜 서점에 오는 걸까?
테이크 쉘터
서점에 대한 글을 읽다가 재밌는 표현이 다른 두 사람에게 반복되는 걸 발견했다. 첫 번째는 2016년에 있었던 서점 수업이라는 토크에서 유어 마인드(Your Mind)의 대표 이로 씨가 한 말이다. 서점을 준비 중인 청중은 서점의 유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다. 책은 안 팔리는데 서점은 왜 생기는 걸까요? 이로 씨는 오히려 지금이 딱 맞는 타이밍이라고 말한다. “피난처로서의 서점이라는 생각을 자주해요. 소수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피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서점 (…) 책이 비주류로 갈수록 서점은 그 비주류만의 피난 공간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두 번째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소설가 파트리크 모디아노(Patrick Modiano)가 한 말이다. “서점은 피난처다. 그 안에 들어서면 우리는 고요함과 더불어 외교적 면책 특권을 누린다.”
서점을 피난처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은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은유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첫 번째는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동시대의 어떤 사람들이 서점으로 오는가? 그들은 일종의 피난민들이다.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게 일상 세계는 상시적 재난의 공간이다. 과도한 경쟁과 성취, 과시와 질투, 의무와 욕망의 총탄이 날라다니는 곳. 사람들에겐 피할 곳, 망명할 곳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해방된 공간. 그러므로 두 번째는 “물질적 공간”으로서의 서점이다. 서점은 기타 상업 공간들과 다른 기능을 수행해왔고 수행할 수 있으며 수행하길 원한다. 물건만 사고 나가는 곳이 아니라, 사유와 교류, 대화와 만남, 휴식과 공상이 외부와 다른 시간성 속에서 일어나는 공간이다. 서점의 시간은 멈춰있거나 느리게 흐르며 가끔 다른 차원에서 흐른다. 스테디셀러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며 많은 책들이 다루는 시공이 동시대의 시공이 아닌 것도 같은 이유다. 서점은 상업적인 공간인 동시에 비상업적인 공간이며 열린 공간인 동시에 닫힌 공간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에 생기는 필연적인 딜레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공간이 허락될까. 만약에 서점을 찾는 피난민들이 현저히 줄었다면? 사회가 더 이상 피난민과 그들의 안식처를 원하지 않는다면? 소수자, 비주류 취향, 아방가르드, 예술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면? 그냥 교보문고가 좋다면?
무한한 대화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는 2013년 강단에서 내려왔고 출판사이자 카페이며 일종의 서점인 겐론(ゲンロン, 그가 2010년 설립한 회사)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대학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교수를 그만뒀다고 말한다. 과거의 대학은 경제 논리 바깥에 있었지만 지금의 대학은 경제 논리 안에 들어와 있다. 겐론은 이런 상황에서 아즈마 히로키 스스로 생각하는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겐론에서 중요한 점은 이곳이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점이다. 그저 철학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면 출판사나 웹사이트로 충분하다. 그러나 대화는 언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짜 대화는 공간을 경유하며 부딪치는 몸에 새겨진다. 신체가 머물고 통과하는 물질적인 장소로서의 서점. 그런 의미에서 서점은 대화이다. 장 뤽 낭시는 서점에 대한 짧은 책 사유의 거래 대하여에서 쓴다. 책은 대화다. 책은 말 걸기 혹은 부름이다. 서점은 도시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말을 걸기 위한 상업 공간이다. 대부분의 상업 공간에서 원하는 것은 소비자의 일방적인 탐색과 지배다. 공간은 당신이 가진 자본(시간과 돈)으로 자신을 지배하기를 바란다. 서점은 다르다. 서점은 쉽게 지배당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유혹하지도 않는다. 당신은 다소 귀찮더라도 서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긋나고 부딪치고 오해하고 운이 좋은 경우에야 겨우 일치점을 찾을 수 있는 대화에 응해야한다. 알고리즘에 따라 원하는 정보만 추천하는 플랫폼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화.
겐론 카페의 전략은 단순하다. 그들은 매번 토크를 진행하는 데 정해진 시간이나 룰이 없다. 이동도 자유롭고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어도 된다. “사람들은 한두 시간으로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시간이 넘었을 때 준비해온 이야기가 바닥이 났을 때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겐론 카페는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Maison des amis du livre (책의 친구들의 집)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서점 중 하나인 파리의 ‘셰익스피어 &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는 실비아 비치가 1919년 11월에 뒤퓌트랑 거리에 오픈한 곳이다. 지금은 5구의 뷔쉐리 거리로 자리를 옮긴 이 서점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처음 출간했으며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을 비롯한 예술계의 전설들이 드나들던 곳. 그러나 실상 실비아 비치에 대해서는 일부만 알려져 있다. 그녀는 레즈비언이었다. 아드리엔 모니에(Adrienne Monnier)라는 일생의 파트너와 함께 서점을 운영했으며 국외자 여성들로 구성된 급진적이고 해방적인 그룹의 멤버였다. 이름은 “심원한 예술의 친구들 연합”.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는 성소수자, 망명자, 아방가르드 예술가, 난민, 빈곤한 떠돌이, 예술 애호가, 콜렉터, 부르주아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실비아 비치가 언제나 환영했던 건 대화와 교류를 원하는 소수의 피난민들이었다.
누구나 삶의 일정 시기 동안 피난처를 필요로 한다. 멀쩡한 사람도 하루 아침에 난민이 될 수 있다. 한달 회원비도 없는 가난한 헤밍웨이가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서 가장 좋아했던 건 서점 중앙의 커다란 난로와 실비아 비치의 친절이었다. 그는 처음 서점을 방문한 날 투르게네프와 헨리 제임스,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빌렸고(공짜로!) 기쁜 마음에 집까지 뛰어가다시피 했다. 카르디날 르무안 거리의 빈곤한 공동 주택에서 그를 기다리던 아내 해들리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너무 멋진 곳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개뿔 아무것도 없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매일 갈 수 있는 서점이 있으니까, 우리를 환영해주는 곳이 있으니까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국내에는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구에 있는 서점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봉 랑베르는 프랑스 현대 미술, 나아가 20세기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갤러리스트 중 한 명이다. 1936년에 태어난 그는 1966년 처음 파리에 갤러리를 오픈했다. 68혁명 직전이었고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열기가 불어닥치는 변화의 시기였지만 파리의 예술계, 특히 미술계는 오랜 전통으로 인한 보수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의 수도는 더 이상 파리가 아니라 뉴욕이었고 파리의 갤러리들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대표되는 역사에 눌려 있었다. 이봉 랑베르는 이런 시기에 누구보다 빠르게 개념주의와 미니멀리즘, 대지미술의 가능성을 알아차렸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소개했다. 로렌스 와이너, 크리스토 & 잔 클로드, 사이 톰블리 등의 작가가 이에 해당한다. 이후 이봉 랑베르는 뉴욕에도 갤러리를 오픈했으며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갤러리스트 중 한명으로 활동했으나 2014년 자신의 모든 상업 갤러리를 정리했다. 300여 점에 이르는 그의 컬렉션은 현재 아비뇽의 호텔 드 꼬몽(Hôtel de Caumont)에 전시되어있다. 그는 프랑스 정부에 자신의 컬렉션을 기증했는데, 이는 6,300만 유로(약 862억 원)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4년 피카소의 기증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증으로 평가받고 있다.
갤러리스트로서 은퇴 이후 이봉 랑베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출판인이자 서점 경영자로서의 삶이다. 그는 책의 힘이 갈수록 쇠퇴하는 지금 시기야말로 책이 가지고 있는 진정성과 예술성의 의미가 커진다고 믿는다.
다음은 프랑스의 갤러리스트이자 출판인, 서점 오너인 이봉 랑베르의 다양한 인터뷰를 선별해 번역한 것이다.
Avez-vous retenu ces artistes en fondant vos choix de façon purement subjective? Aviez-vous déjà l‘intuition de leur succès à venir?
당신은 순전히 주관적인 방식으로 예술 작품과 작가를 선별했나? 그들이 앞으로 성공하리라는 직관이 있었나?
Non, je n‘avais pas l’intuition de savoir quel allait être leur succès. J‘exposais des artistes qui m’intéressaient, avec qui je m‘entendais bien. Mais, il est vrai qu’en faisant ce métier, ma mission principale consistait à faire connaître ces artistes. C‘est ce que j’ai fait. Parmi eux, certains sont devenus très célèbres, d‘autres non. Mais à ce moment là, je ne pensais pas à la gloire dont ils allaient bénéficier.
아니다. 그들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는 직감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내 눈길을 끌고 나의 가치관과 맞는 예술가들을 전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갤러리스트로서 해야 할 주된 임무는 이 예술가들을 홍보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매우 유명해졌고, 일부는 그렇지 못했다. 그때 나는 그들이 미래에 누리게 될 영광을 미리 생각한 적은 없었다. (카롤린 레브룬, 2005)
You showed Basquiat as well. But it seems that Jean-Michel Basquiat or Schnabel do not exactly match the image people have of your tastes in art.
당신은 바스키아(Basquiat)의 전시도 개최하지 않았나? 사실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슈나벨(Schnabel)은 당신의 예술적 취향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I wasn’t going to do a show of Robert Barry or Lawrence Weiner every two years! I just wanted to do something different. Working with Combas or Schnabel was an explosion of imaginative freshness. As far as I know, I actually organized the only show in Paris for which he himself picked the works. It took years before we finally made it. Finally, we decided that we were going to start in 1988 together. Even if he worked in a complicated way, he had chosen every painting, every drawing specifically for this gallery.
난 2년마다 로버트 배리(Robert Barry)나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의 전시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뭔가 다른 걸 하고 싶었다. 콩바(Combas)나 슈나벨과 함께 일하는 것은 창조력의 신선한 폭발과도 같았다. 내가 아는 한, 내가 기획한 전시는 파리에서 그가 직접 작품을 고른 유일한 전시였다. 우리가 마침내 성공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비록 그가 복잡한 방법으로 일을 했더라도, 그는 이 갤러리를 위해 모든 그림을 하나하나 직접 선별했다. (도나시엔 그라우, 2016)
“An art dealer’s job is to show the best of what’s new,” Lambert says. “I made some very big, violent leaps. But I needed to change. At 40 years old, I couldn’t just stay with the same kind of artists.” But it’s not only Lambert’s unique taste that ties the collection together—it’s also his deep personal connections: The dealer’s own image, or a version of it, even turns up in a few of the artworks. In 1972, when Twombly was at Lambert’s house in Paris, the artist decided to do a “portrait” of his gallerist. “I was standing next to a wall,” Lambert remembers. “And Cy said, ‘Okay, we’re going to measure this wall, and I’m going to do your portrait according to those measurements.’” The resulting image depicts Lambert as a very thin, vertical line—imposing yet intangible.
랑베르는 “갤러리스트의 일은 새로운 것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주 파격적인 도약을 시도했다. 나는 계속해서 변해야 했다. 나이가 마흔 살이 되어서도 또 똑같은 작업들만을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컬렉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랑베르의 독특한 취향에서 비롯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가 맺은 뜻깊은 인연들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랑베르라는 인물이 가진 자체의 이미지는 몇몇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1972년, 톰블리가 파리에 있는 랑베르의 집에 있을 때, 그는 랑베르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결정했다. 랑베르는 “그때 나는 줄곧 벽 옆에 서 있었다.”라고 회상한다. “그러고선 싸이(Cy)는 ‘좋아, 우리는 이 벽을 측정할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치수에 따라 너의 초상화를 그릴 거야.’라고 제안했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 이미지는 랑베르를 매우 얇고 수직적인 선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강렬하면서도 미묘한 선이었다.
Of anyone in his stable, Lambert seems to have forged the tightest bond with Goldin, the American photographer whose diaristic explorations of addiction and sexuality have influenced generations of photographers. “We’ve had a relationship of love, of fusion, of anger, of everything,” Lambert says. “With lots of artists, there is devotion but there are also ruptures—because the artist always thinks he is right, and so does the dealer.”
그는 업계 내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중독과 성에 관한 일기 방식(diarist)의 탐구로 동시대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Nan Goldin)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랑베르는 “우리는 사랑, 융합, 분노 등 우리가 오는 모든 방식의 관계를 맺었었다.”라고 말했다. “[갤러리스트는] 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열렬한 헌신도 있지만 파열도 있다. 왜냐하면 예술가와 갤러리스트 모두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베글리, 2016)
Warum schließen Sie Ihre Galerie? Ist Paris kein guter Marktplatz mehr?
왜 갤러리를 닫게 되었나? 파리가 더 이상 시장의 구실을 못하는 것인가?
Paris ist schon seit langem keine Kunsthauptstadt mehr. Mit dieser Realität kann man leben. Aber ich mache heute nicht mehr das Handwerk, das ich vor zehn Jahren gemacht habe. Kunstmessen haben eine übermächtige Bedeutung im internationalen Betrieb gewonnen. Außerdem, ich bin 78 Jahre alt. Ich möchte mich vor allem meiner zweiten Leidenschaft widmen: Büchern und bibliophilen Werken.
오랫동안 파리는 예술의 수도가 아니었다. 10년 전까지 아트 페어와 관련된 작업을 한 후로 더 이상 예술 시장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꺼려진다. 그 대신, 나는 책과 출판업이라는 나의 두 번째 열정에 전념하고 싶다.
War das früher anders? Haben sich nicht eher die Relationen nur verschoben?
최근의 예술시장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Es ist ein Unterschied wie Tag und Nacht! Heute kann man dieses Foto (er zeigt auf ein Foto von Nan Goldin in seinem Büro) im Internet verkaufen. Vor zwanzig Jahren kamen die Leute in die Galerie, und wir teilten miteinander, mit Kunst zu leben und darüber zu sprechen. Das kommt natürlich noch vor, aber die Welt der Käufer hat sich sehr verändert. Die Spekulation lässt sich nicht mehr ignorieren. Heute wird man als Galerist mit einem Anlageberater verwechselt. Dem verweigere ich mich. Leute, die hierherkommen, um eine Kapitalanlage zu machen, schicke ich zur Bank. Das ist nicht mein Beruf. Die Kunstberater sind eine traurige amerikanische Erfindung. Sie erinnern mich an Leute, die einen Dekorateur mit der Einrichtung ihres Hauses beauftragen: Mein Haus ist leer, füllen Sie mir das doch bitte auf, ich zahle dafür.
낮에서 밤이 된 것 같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진(그는 사무실에 있는 낸 골딘의 사진을 가리켰다.)을 온라인상에서 충분히 판매할 수 있다. 20년 전, 사람들은 작품을 보기 위해 직접 갤러리에 방문했고, 갤러리는 예술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작품을 구매하는 손님들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예술은 마치 하나의 ‘대안적인 통화’처럼 거래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일이라면 나는 완전히 손을 떼고 싶다. (베티나 볼파트, 2014)
Something very special is your love for books. You have this ability to make connections between artists and writers…
매우 특별한 것은 ‘책에 대한 당신의 애정’이다. 당신에겐 예술가들과 작가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I did several of them. One of the most spectacular is the essay Roland Barthes wrote on Cy Twombly. I knew he could be sensitive to that work. So I asked him to come over to my gallery. I had put pictures of Twombly’s work all over my desk, and he looked at them. He asked for some time to think about it. I practically begged him, and he did it. There is also this bibliophilia series, with collaborations such as On Kawara and the poet Jacques Roubaud.
그렇다. 가장 흥미를 끌 만한 작업 가운데 하나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가 싸이 톰블리(Cy Twombly)에 관해 쓴 에세이다. 나는 바르트가 그 작업에 착수하는 일에 민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짜고짜 그를 내 갤러리로 초대했다. 나는 톰블리의 작품 사진들을 보이는 곳에 놓아두었는데, 그가 그것들을 바로 알아차리고는 에세이 작업에 관해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다. 나는 거의 애원하다시피 그에게 청탁을 했고, 결국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이외에 온 가와라(On Kawara)와 자크 루보(Jacques Roubaud)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 출판 시리즈도 있다. (도나시엔 그라우, 2016)
Hat sich die Galerie als öffentlicher Raum sehr verändert, hat Sie eine Zukunft als Marktplatz?
공공 장소로서 갤러리 공간은 얼마나 변한 것 같나? 여전히 미래에도 시장 가치가 남아 있을 것 같은가?
Galerien sind noch immer offene Räume für ein Publikum, das kostenlos bleiben und phantastische Ausstellungen sehen kann. Selbst wenn gemunkelt wird, dass die Galerien vom Internet und den Auktionshäusern verdrängt werden könnten, selbst wenn Museen heute Ausstellungen zeigen, die sie vor dreißig Jahren noch nicht gemacht hätten, glaube ich nicht an den Untergang der Galerien. Auch das Internet schafft das nicht - wir verkaufen ja selbst über Internet. Es gibt so viel Positives zu berichten. Museen sind doch heute unglaublich viel neugieriger auf zeitgenössische Kunst.
여전히 갤러리들은 자유롭게 머물며, 환상적인 전시를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인터넷과 경매장에 의해 갤러리들이 제구실을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장소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인터넷도 그렇게 만들지 못한다. 오히려 이것이 미술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예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고, 미술관들도 이에 힘입어 현대 미술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베티나 볼파트, 2014)
Que pensez-vous de la situation économique du marché de l‘art en France?
프랑스의 예술 시장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Je n‘ai pas envie de parler de la crise. Faisons de bonnes expositions avec de bons artistes et tout ira bien!
나는 위기에 관해 말하고 싶지 않다. 훌륭한 예술가들과 좋은 전시회를 하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카롤린 레브룬, 2005)
ARTISTS BOOKS EDITIONS. Publications by Yvon Lambert and Hans Werner Holzwarth at Galerie Max Hetzler in Berlin 8 June – 21 July 2018. An artist book can come in many incarnations: it can be a work of art in its own right, a multiple produced in a limited edition, an artist&s take on their work, adding a narrative to individual images, or even a reinterpretation of the book as a medium. Galerie Max Hetzler presents an exhibition of artists, artist books and editions, in homage to the legendary gallerist Yvon Lambert and his own imprint of artist books started in the 1960s, and as a celebration of our fruitful collaboration with publisher and book designer Hans Werner Holzwarth, with whom we have been making books since 2000.
아티스트 북 에디션. 2018년 6월 8일부터 7월 21일까지 베를린의 갤러리 막스 헤츨러(Galerie Max Hetzler)에서 이봉 랑베르와 한스 베르너 홀츠바트(Hans Werner Holzwarth)의 출판물 전시. 예술가의 책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될 수도 있고, 한정판으로 제작된 출판물이 될 수도 있고, 예술가가 작품을 맡거나, 개별 이미지에 서사를 첨가하거나, 심지어 책을 매개로 재해석하는 등 여러 화법으로 나올 수 있다. 갤러리 막스 헤츨러는 전설적인 갤러리스트 이봉 랑베르와 1960년대에 시작된 아트 북 작업에 경의를 표하고, 2000년부터 책을 만들고 있는 출판업자 겸 도서 디자이너 한스 베르너 홀즈워스와 우리의 결실 있는 협력을 축하하는 의미로 예술가, 아티스트 북, 판화 전시회를 선보인다. (이봉 랑베르 출판)
Set in the heart of the old Marais, this gem of a bookstore is a place of pilgrimage for bibliophiles from all over the city. At first glance, the ramshackle shelves can seem overwhelming – but that‘s only because each lovingly displayed book, magazine and catalogue is different from the next. Here, hard-to-find European design and architecture titles are flanked by creative cookbooks as rare, expensive fashion tomes nudge up against literature fanzines and art postcards. Owner Yvon Lambert is something of an art hero in Paris. Probably best known for his unwavering support of American conceptual artists, his collection of over 550 masterpieces – deemed one of the most important art gifts to the French state in recent history – can be seen at his museum in Avignon.
옛 마레 지구의 중심에 위치한 이 숨겨진 명소는 도시 전역에서 온 책 애호가들을 위한 순례의 공간이다. 얼핏 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서재가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나란히 꽂힌 각각의 책, 잡지, 카탈로그들이 제각기의 방식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끌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유럽의 희귀한 디자인 및 건축 도서들과 함께 희귀하고 값비싼 패션 단행본, 문학 팬진(fanzines)와 예술 엽서, 독립 출판물로 나온 독특한 디자인의 요리책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서점의 주인인 이봉 랑베르는 파리의 예술적 영웅 같은 존재다. 미국의 개념주의 예술가들에 대한 변함없는 후원자로 잘 알려진 그의 걸작 550여 점은 아비뇽에 있는 그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But those who aren‘t willing to travel can get a strong sense of his curatorial style at the bookstore: at Librairie Yvon Lambert, monochrome photographs by Andy Warhol sit next to large format work by artists Barbara Kruger and Nan Goldin. And all of these landmark visuals are available for purchase.
별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그의 큐레이션으로부터 강한 자극을 받을 수 있다: Librairie Yvon Lambert에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단색 사진 작품, 화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와 낸 골딘(Nan Goldin)의 대형 포맷 작업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런 획기적인 작품들은 모두 구매할 수 있다.
There is a genuine sense of wonder at this Parisian vault of countless publications and affordable artworks where, it might be said, a passionate ‘crier tout bas’ – a quiet scream – emphatically states, “print is not dead.”
수많은 출판물과 합리적인 가격의 예술품으로 가득한 이 파리지앵의 금고를 둘러싸고 “활자(print)는 죽지 않았다.”라고 조용히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테렌스 테, 2016)